배임죄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형법 체계 속에서 기업 경영자와 일반 국민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쳐온 범죄 유형입니다. 형법 제355조와 제356조에서 규정하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 성립합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논란이 많습니다. 특히 기업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까지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배임죄 폐지” 혹은 대폭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회적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배임죄의 개념과 문제점, 폐지 주장과 반대 논리, 국내외 사례 비교, 그리고 향후 형법 개정의 방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배임죄란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같은 법 제356조는 업무상 배임을 별도로 규정하여, 업무상의 지위를 가진 자가 배임 행위를 했을 경우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주로 회사 경영진, 이사, 대표이사, 임원, 공무원 등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타인의 업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예컨대 대표이사가 회사 자산을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매각하거나, 불법적 거래로 회사 자금을 유용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경우에 임무 위반이 되는지, 합리적 경영 판단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과 고의적 손해 발생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불명확합니다.
그 결과 기업 경영진이 정상적인 판단을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면 배임죄로 기소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는 곧 ‘경영자의 족쇄’로 불리며 경제 활동 위축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배임죄 폐지 주장의 배경과 찬성 논리
배임죄 폐지 논의가 힘을 얻는 배경에는 경영 의사결정 위축, 국제 기준과의 괴리, 정치적 남용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경영 의사결정 위축
기업 경영은 언제나 위험과 불확실성을 수반합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손실은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경영자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전한 선택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혁신 저하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2. 국제적 기준과 괴리
OECD 주요국은 배임죄를 형사범죄로 광범위하게 적용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은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회사법적 제재로 해결하며, 형사처벌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적용합니다.
반면 한국은 배임죄 기소 건수가 많고, 기업 총수나 임원까지도 쉽게 형사재판에 넘겨집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만 과도한 규제 리스크를 떠안는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3. 정치적 남용 가능성
배임죄는 불명확한 개념 탓에 정치적 목적이나 사회적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굵직한 대기업 총수들이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와 주가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배임죄 폐지 반대 논리와 사회적 우려
그러나 배임죄 폐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1. 이해관계자 보호 필요
배임죄는 경영자가 회사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제재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만약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소액주주, 채권자,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이 쉽게 침해될 수 있습니다.
2. 민사적 구제의 한계
손해배상 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실제 피해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민사적으로만 다룰 경우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3. 경제 범죄 억제 효과
우리나라 특유의 경제·정치 구조에서는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대규모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임죄가 없어진다면 이러한 행위를 억제할 형사적 수단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임죄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반대 측의 입장입니다.
국내 판례와 주요 사건에서 본 배임죄
배임죄 폐지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실제 판례와 사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대기업 총수 사건: 대규모 합병이나 투자 과정에서 경영상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배임 혐의가 적용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대부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며 “합리적 경영 판단”임을 인정했습니다.
- 중소기업 사례: 대표이사가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 의해 회사 자산을 저가에 매각한 경우, 명백한 고의적 손해 유발로 판단되어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 공공기관 사건: 일부 공기업 임직원이 내부 규정을 위반해 특정 업체에 유리한 계약을 체결한 경우 배임죄가 적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판례를 통해 보면, 단순한 경영상 실패는 무죄, 고의적·편법적 이익 추구는 유죄로 구분하려 하지만, 실제 판단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합니다.


해외 입법례와 비교
미국은 경영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여, 경영자가 충실 의무와 선의의 판단을 다했을 경우 결과적으로 손실이 나더라도 형사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회사법적 책임만 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 또한 회사법을 통해 이사들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형사처벌보다는 민사상 구제에 중점을 둡니다.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배임죄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적용 범위는 한국보다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의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 강도가 강해 국제적 기준과 괴리감이 크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앞으로의 형법 개정 논의와 전망
현재 국회와 법조계에서는 배임죄 폐지보다는 개정 방향으로 논의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 경영상 판단의 원칙 도입: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 구성요건 구체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줄이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 처벌 범위 축소: 고의적이고 명백한 이익 침해 행위만을 배임죄로 규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진적 개정은 기업 경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하는 절충안으로 평가됩니다.



배임죄 폐지 논의는 단순한 형법 개정 이슈를 넘어, 우리 사회가 기업 활동과 사회적 보호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우리 기업이 세계 경쟁 속에서 과감히 혁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대로 반대 측은 배임죄가 사라지면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제어할 수단이 부족해지고,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따라서 배임죄의 완전 폐지보다는,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경영 판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합리적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의 형법 개정 논의는 기업의 자유와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제도 개혁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